최근 파트너사 디자인 에이전시와 협업으로 CI 리뉴얼 제안서를 작성했습니다. 굉장히 탄탄한 중견기업이라고 들었는데, 처음엔 CI가 너무 구식이라 놀랐고, 제안 중에는 클라이언트가 브랜딩에 비용을 안 쓰려 하는 것에 씁쓸했습니다. 브랜드비를 운영하면서 새끈하고 디테일 엄청난 해외의 브랜딩 사례에 감탄하면서 '우리나라도 얼른 이 수준을 따라가야 할텐데!'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제 현장과의 괴리는 상당히 큰 것이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많이 우울했어요. 하지만 이와 동시에 내 자신이 너무 교만하지 않았나 라는 반성도 했습니다. 브랜딩 일을 20년 넘게 일해오고 있지만, 항상 쉽지가 않네요!
이런 좌절 속에서도 뉴스레터의 브랜딩 리뷰는 계속됩니다. 시니컬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은연 중에 묻어나올 수도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주관적 생각이라는 것, 다른 관점과 의견도 존중하며 환영합니다.
블록으로 표현된 레고의 디자인 시스템
레고의 디자인 시스템이 최근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미 여러 브랜딩&디자인 사이트에서 다룬지라 소개를 생략할까 하다가, 그래도 브랜드비만의 관점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적어 보아요.
새로운 디자인 시스템은 그동안 레고 내부에 무수히 많았던 디자인 시스템과 가이드라인을 하나로 통합한 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레고 블럭의 특성을 반영한 일명 'Clutch System'은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어디에 반영되었다는거지?' 라고 의문을 갖게 할 정도로 너무 작고 복잡한 형태로 표현이 되고 있어요. 여러분은 위 이미지에서 새로운 디자인 시스템 요소를 바로 찾을 수 있나요? 저는 처음에 이미지 작업에서 실수한 줄 았었거든요. 또 레고 블럭들이 조합되서 만들어지는 그래픽 요소는 모션 그래픽 상으로는 참 재미있었지만, 실제 응용 디자인에서 얼마나 활용이 될까 라는 의구심도 들었어요. 아무리 훌륭한 디자인이라도 어렵고 복잡하면 얼마 되지 않아 폐기되는 사례를 종종 봐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핀 심볼의 대체일까? 핀터레스트 디자인 시스템
공교롭게도 또 다른 글로벌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 시스템 개발 소식을 접해 함께 공유합니다. 레고와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심플하고 무난한 디자인 시스템입니다. 핀터레스트의 상징인 핀이 아니라 접는 책갈피 형태로 표현한 것이 흥미로웠어요. 그런데 모아두고 기억하기 위한 행위라는 것은 둘이 같지만, 핀과 접는 책갈피를 동시에 쓰지는 않기에 조금 의아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핀 심볼을 빼려는 전략인가? 라는 생각까지 해보았답니다.
아직 핀터레스트 웹사이트에서는 새로운 디자인 시스템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태평양 더하기 태평양 = TP ?
아시다시피 저는 네이미스트 출신이라 새로운 네임이나, 사명 변경은 꼭 그 의미를 살펴봅니다. 덕다운, 구스 다운 충전재로 알려진 태평양물산이 이번에 사명과 CI를 리뉴얼했는데요, 처음에 이름을 보고는 "왜 Y가 빠졌지?"라고 생각했었어요. 한글 태평양의 이니셜은 TPY이니까요. 그런데 설명을 보니, 태평양의 T와 Pacific의 P를 딴 것이라고 합니다. 응??? 이공계 출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공식이네요. 같은 태평양에서 변신한 아모레퍼시픽이란 네임이 상대적으로 매우 훌륭해 보입니다. 바뀐 CI 디자인도 깔끔하긴 하지만 좀 평이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어요.
도보 여행자를 위한 이정표가 되다
해외 케이스 스터디를 살펴볼 때 빠른 정보 캐치를 위해 번역기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오역이 있어서 저를 당황하게 만들 때가 있어요. Inntravel 소개 문구가 "워킹 할리데이 여행사"였었거든요. 그런데 디자인 컨셉인 이정표와 무슨 상관인거지? 라고 무척 의아했는데, 영어로 확인해 보니... Walking Holiday 였던 것입니다. 번역기가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할 만도 하죠.
도보 여행 전문 여행사는 몇 년 전 광풍이 불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것 같아요. 여행사는 도보 여행 코스를 짜 주고, 중간 숙박 장소 예약, 그리고 숙소에서 숙소로 짐을 옮겨주는 서비스를 제공 한다고 합니다. 최근의 랜선 여행, 숏폼 촬영을 위한 여행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아날로그 & 슬로우 여행입니다. 브랜딩 역시 화려한 모션 그래픽 하나 없는 담백한 디자인이예요. 그런데 매력적입니다!
어려운 이름을 보완해주는 베리어블 심볼
RSPCA는 영국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의 약칭입니다. (영어 이름 역시 매우 길어 생략합니다.) 영국의 동물보호단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창립 이후로 단 한번도 로고를 바꾸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에 새롭게 도입한 로고는 이름 옆에 붙어 다양하게 변화하는 심볼이 특징입니다. 그렇습니다! 구호 대상에 따라 심볼 프레임 안 동물 그래픽이 바뀌는 것이죠. 예를 들면 강아지 학대 방지와 관련한 메세지를 주고자 할 때에는 심볼 프레임 안에 강아지 그림이 들어가게 됩니다.
재미있고 매력적인 접근입니다만, 또 저는 실무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세상에 무수히 많은 동물이 있는데, 설마 그 모든 동물을 다 그린 것은 아니겠지? (예시 광고 문구에는 "우리는 달팽이조차 보호합니다"가 써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고 흥미로운 사례여서 추천합니다.
한국영화인협회의 파산신청 후 대종상의 행방은 과연?
왜 모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하지 않았을까?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시상식 중 하나인 대종상이 작년에는 유난히 조용했던 것 같아요. 알고보니 그동안 공정성 이슈로 논란이 되었고 많은 영화인들이 불참을 했다고 합니다. 그 여파인지 모르겠지만 주최측인 한국영화인협회가 작년 말 파산 선고를 받았다고 하네요. 대종상영화제는 브랜드로서 개최권이 별도 매각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뒤숭숭한 상황에서 발표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작년 대종상영화제 로고를 공유합니다. 캘리그라피 작가가 디자인했다고 해요. 개인적으로 파산 직전에 있던 한국영화인협회가 과연 비용을 적절히 지불했는지가 무척 궁금하더라고요. 씁쓸한 현실입니다.
일 년에 한 두 번 꼴로 해외 마켓 트렌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히 B2B 분야는 무척 낯설고 어려운 신기술 때문에 이해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또 우리나라 시장 환경과는 너무 달라서 정말 말그대로 "다른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SAF 역시 굉장히 생소한 분야이고, 우리나라 기업들은 후발주자여서 당분간 SAF 브랜딩 프로젝트가 발생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또 나만 재미있는 거 아닌가' '나중에 브랜딩 프로젝트 진행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래도 전 산업 분야에서 탄소감축, 탈탄소를 위한 정책이 의무화되고 있는 메가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인류의 공공의 적은 탄소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